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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의 로버트 몬다비 센터, KAU, 어퍼 머티브 액션

by oksk 2024. 6. 20.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

로버트 몬다비 센터

로버트 몬다비는 미국의 와인 주조업자로 북부 캘리포니아로 대표되는 정확하게 나파 밸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미국 포도주를 세계적인 와인으로 발돋움하게 만든 주역임과 동시에 유럽산 포도주와 달리 포도의 품종을 라벨에 명시하는 기법으로 미국산 포도주를 신대륙 포도주의 대표자로 성장시킨, 미국 와이너리의 대부라고 불린다. 그는 1913년 미국 미네소타주 버지니아 출생으로 부모는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10세 때 가족이 캘리포니아 주 로디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몬다비의 부친으로 로디에서 홈메이드 와인 전용 포드를 포장, 동부지역으로 판매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C.Mondavi and Sons라는 상호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37년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몬다비는 그해 고교시절부터 사귀던 여자 친구인 마조리 엘렌 데클루진(Marjorie Ellen Declusin)과 결혼,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한편 1943년 몬다비는 가족이 제임스 모핏에게서 인수한 세인트 헬레나 소재의 찰스 크럭 양조장 경영에 참여하지만 1965년 동업 중이던 동생 피터와 경영노선을 둘러싸고 다툰 후 이탈해 오크빌에 프랑스산 포도주와 대등한 품질의 포도주를 만들겠다는 포부로 양조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자신의 두 아들 마이클과 팀 몬다비와 더불어 유럽산 최고급 와인과 경쟁하기 위한 목적으로 로버트 몬다비 양조장을 창업했는데 장남인 마이클은 판촉을, 팀은 양조자로 유럽산 최고급 와인과 경쟁할 동종 포도주 개발과 판매를 시작했다.  1968년 몬다비는 참나무통에 숙성시킨 소비뇽 블랑 와인을 '푸메 블랑'이라는 라벨로 출시했다. 당시 소비뇽 블랑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하는 품종이었으나 제품은 대박을 쳐서 '푸메 블랑'이라고 하면 소비뇽 블랑의 대명사로 취급될 정도였다. 이후 연거푸 최고급 와인을 출시 감정가와 판매상들의 호평을 이끌어낸 몬다비는 1979년 캘리포니아 주 로디에 몬다비 우드브릿지 양조장을 설립, 최고급 인기 와인 생산지로 성장시켰다. 이후 당시 최고급 브랜드인 샤또 무똥 로쉴드의 필리프 드 로쉴드와 합작하여 오푸스 원 양조장을 설립하고 이외에도 1990년 이후 유럽, 남아프리카, 그리고 호주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그 후 2005년 몬다비는 경영문제로 갈라섰던 동생 피터와 함께 양가 소유의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한 와인을 함께 제작, '안코라 우나 볼타'라는 라벨로 출시해 나파밸리 경매에서 40만 달러에 낙찰되었으며 여기서 얻어진 수익금은 자선기금으로 기부되었다. 2001년 1억 달러를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에 기부해 대학 공연장 건립에 쓰이게 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UC 데이비스에 위치한 로버트 몬다비 센터이다. 아울러 2천5백만 달러를 기부해 로버트 몬다비 와인 및 식품학 학교를 설립하도록 하는 등 교육 및 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러한 자선활동과 아울러 포도주의 고급화에 힘쓴 공로로 미국 조리학교의 양조 판매상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등의 개인적인 명예도 얻었다. 2008년 5월 16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KAU(Korea Aggies United)

데이비스에 있는 한인 동아리로 2015년 처음 설립되었으며,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셜 이벤트를 주최하여, 데이비스 한인 학생들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경험과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며,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 데이비스 캠퍼스 내에서 한인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 2년 동안은 별다른 활동이 없었지만 2021년 대면 수업이 다시 진행되었을 때 임원들이 카우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고, 현재 한 이벤트에 평균적으로 40~50명 정도가 오는 큰 규모의 동아리가 되었다. 동아리 수익은 매년 도움이 필여한 기관에 기부되고 있다. KAU는 설날, 추석 등 주요 한국 명절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이러한 행사는 한국 전통 음식, 게임, 공연 등을 포함하여 학생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K-pop 댄스 공연, 한복 체험, 한국 영화 상영회 등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주최하여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인다. 신입생 환영회. 야외 활동, 정기 모임 등 다양한 교류 활동을 통해 회원들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친목을 도모한다. 타 문화권 학생 단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문화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UC Davis 내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한다. 학술 세미나, 스터디 그룹,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학생들이 학업과 커리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졸업생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현직 전문가와의 교류 기회를 제공하고, 취업 및 인턴십 정보를 공유한다.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통해 UC Davis와 그 주변 지역 사회에 기여하고, 회원들이 사회적 책임감을 함양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한국 문화 관련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통해 지역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고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KAU는 학생들로 구성된 운영진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회장, 부회장, 총무 등 다양한 직책을 통해 조직의 원활한 운영을 도모한다. UC Davis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면 누구나 KAC에 가입할 수 있으며, 정기 모임과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KAU는 UC Davis 내에서 한인 학생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학업과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을 통해 회원들의 문화적 이해와 글로벌 마인드를 확장하고, 캠퍼스 내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교류를 촉진한다. KAU는 이러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통해 UC Davis의 다문화적 환경을 풍요롭게 하고, 학생들이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퍼 머티브 액션

Affirmative action은  소수 집단 우대 정책, 적극적 우대조치라고 하기도 한다. 긍정적 조치, 적극적 조치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 러시아 정보기관의 서방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 경제 및 사회적 공작작전을 가리키는 active measure라는 용어와 혼동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해야 한다. 영국 등지에서는 positive discrimination 이라고도 한다. 즉 사회적 자원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차이를 상쇄시키는 일종의 어드밴티지다. 역사적으로 복지가 부족하다면 폭동이 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 소수집단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 시행되는 정책으로 1960년대 흑인인권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엔 인종차별을 완화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범위가 성, 장애 등으로 확장되었다. 때문에 구미권에서 libreral agenda로 여긴다. 앨런 바키는 NASA엔지니아 출신이자 미 해병대 참전군인 출신의 백인 남성이며 1973년과 1974년 UC Davis 의과대학 등에 지원하였으나 불합격하였다. 그는 소수인종으로 16%을 선발하는 특별전형 때문에 자신의 성적이 더 좋음에도 입학을 거부당했다고 말하며 이는 차별이고 1964년 민권법 제6장, 미국수정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1975년 주대법원은 캘리포니아 대학의 특별전형 시스템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 1976년 법원은 대학에 바키의 입학을 지시하였으나 대학이 거부하며 연방대법원에 상소한다 이에 1978년 다수의견을 집필한 루이스 파월 대법관은 차별의 역사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인종을 플러서 팩터로 사용하는 것은 합법이나 소수인종을 위해 고정된 쿼터를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라 판결하며 대학 측에 바키의 입학을 지시한다. 결국 앨런 바키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입생이 되어 입학에 성공하였고 졸업까지 한다. 이 판결은 입학 시 여러 가지 고려요소 중 인종이 한 가지 될 수 있는 어퍼머티비 액션 자체는 합헌이라고 봤지만 인종만을 근거한 쿼터제는 위헌이라고 보았다. 해당 사건은 이후 나온 모든 어퍼머티브 액션 관련 소송에서 인종을 고려요소 중 하나로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의 근거로 사용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인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많은 근거가 되었고 상대적이고 다양한 상황 중 하나가 되었다.